암살자 네로
- Manager

- 6일 전
- 1분 분량
네로라는 인물을 처음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칼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그의 버릇이 먼저 떠오른다.
누군가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놓쳤던 사람이 갖는 그런 습관
이 드라마는 바로 그 버릇의 이유를 조금씩 벗겨내듯 보여주는 이야기였다.
칼로 해결해온 삶이었지만, 가장 어려운 건 말 한마디였다
네로는 암살자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감정 표현에 어둡고 인간 관계에 서툴렀다.
상대의 숨소리만 듣고도 위험을 감지하지만 정작 자신의 딸이 눈앞에 서 있을 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조차 몰라 주먹만 꽉 쥔다.
드라마가 흥미로웠던 건 그의 폭력성이 아니라 그 폭력 너머에 있는 낯섦과 서툼이었다.
재회는 기다렸던 순간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충돌에 가까웠다
사람들은 보통 재회를 감동적인 장면으로 그리지만 이 작품은 반대다.
딸과 다시 마주한 순간, 네로는 기쁨보다 혼란이 먼저 치밀어 올랐고 딸은 반가움보다 오래된 상처가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.
두 사람 사이엔 오해와 공백이 너무 길었다.
그 간격 자체가 또 다른 전쟁처럼 느껴졌다.
액션보다 더 강렬했던 건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
칼부림이나 추격도 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네로가 혼자 멈춰 서 있는 장면들이었다.
누구도 없는 새벽 거리, 문이 반쯤 닫힌 집 앞, 딸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들
그 장면들은 폭력보다 더 깊고 조용하게 가슴을 때렸다.
그가 암살자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실 앞에서 더 약해지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.
복수의 드라마가 아니라, 관계를 다시 배우는 드라마였다
처음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중요해 보였지만 점점 그 구분은 흐려진다.
대신 남는 건 네로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딸이 어떻게 그를 받아들이는지였다.
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선 칼보다 말이 먼저 필요하다는 걸 네로는 가장 늦게 깨닫는다.
그래서 그의 변화는 느리지만 묵직하고 그 변화가 이 드라마의 정서적 중심이었다.
암살자 네로는 칼의 움직임보다 오랫동안 뒤만 보며 살아온 남자가 처음으로 ‘앞’을 바라보려 애쓰는 이야기에 가깝다.




